새소식 상세보기

새소식

SHORTLIST 2022 : 마음에 기대 선을 긋다 07
2022-10-05 13:27
헤르타 뮐러, 숨그네 (2020, 문학동네)
Herta Muller, The Hunger Angel (2010, Metropolitan Books)

---
87-88쪽
나는 수용소에서 벌써 두번째 겨울을 맞았지만, 집으로 편지를 쓰는 것은,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금지되었다.

-----
17쪽
바로 거기, 가스계량기가 있는 나무복도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87쪽
일찍 뜬 달 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의 턱 아래로 하나, 오른뺨 뒤로 하나, 구름 베개가 밀고 들어가더니 다시 왼뺨으로 밀려나왔다. 나는 달에게 물었다. 우리 어머니가 어느새 그렇게 약해지셨나. 어머니가 아프신가. 집은 그대로 있을까. 어머니는 아직 거기에 사실까. 아니면 어머니도 수용소로 가셨을까. 아직 살아 계시기는 한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아실까, 아니면 이미 죽었다고 믿고 내 생각을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실까.
99-100쪽
오 년간의 수용소 시절처럼 죽음에 결언히 맞선 적은 없었다. 죽음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건 지금의 내 삶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삶뿐이었다.

261쪽
우리는 샤워를 하고 벌거벗은 채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뒤틀리고 비루먹은 몸뚱어리들, 벌거벗은 우리는 불량 판정을 받은 역축들 같았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더는 몸이랄 것이 없는데 뭐가 부끄럽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가 수용소에 있는 이유는 몸, 육체노동 때문이었다. 몸이 줄수록 몸이 벌을 받았다. 이 껍데기는 러시아인들의 것이었다.
SHORTLIST 2022 : 마음에 기대 선을 긋다 07
SHORTLIST 2022 : 마음에 기대 선을 긋다 07